책소개
한국 대표 시인의 육필시집은 시인이 손으로 직접 써서 만든 시집이다. 자신의 시 중에서 가장 애착이 가는 시들을 골랐다. 시인들은 육필시집을 출간하는 소회도 책머리에 육필로 적었다. 육필시집을 자신의 분신처럼 생각하는 시인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.
육필시집은 생활에서 점점 멀어져 가고 있는 시를 다시 생활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기획했다. 시를 어렵고 고상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쉽고 친근하게 접할 수 있는 것으로 느끼게 함으로써 새로운 시의 시대를 열고자 한다.
시집은 시인의 육필 이외에는 그 어떤 장식도 없다. 틀리게 쓴 글씨를 고친 흔적도 그대로 두었다. 간혹 알아보기 힘든 글자들이 있기에 맞은편 페이지에 활자를 함께 넣었다.
이 세상에서 소풍을 끝내고 돌아간 고 김춘수, 김영태, 정공채, 박명용, 이성부 시인의 유필을 만날 수 있다. 살아생전 시인의 얼굴을 마주 대하는 듯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.
200자평
비바람 속에서도 하늘을 향해 뻗어 가는 나무를 닮고 싶은 박상률 시인의 육필시집.
표제시 <꽃동냥치>를 비롯한 50편의 시를 시인이 직접 가려 뽑고
정성껏 손으로 써서 실었다.
지은이
박상률
1981/ 전남대학교 상과대학 졸업
1990/ ≪한길문학≫ 신인상 시 당선, ≪동양문학≫ 신인상 희곡 당선
1996/ <문학의 해 기념 불교문학상> 희곡 부문 수상
1995∼2011/ 명지대, 경기대, 동덕여대, 한남대, 숭의여대 등에 강사, 겸임 교수로 출강
2001∼2006/ 계간 ≪문학과경계≫ 편집위원
2010/ 월간 ≪학교도서관저널≫ 기획위원
2006∼2011/ 계간 ≪청소년문학≫ 편집 주간
기타/ 한국작가회의 <희곡, 아동문학> 분과위원장, 한국문화예술위원회 <사이버 문학광장 글틴> 획위원, 국제아동도서협의회(IBBY) 한국운영위원, 중고등학교 국어 및 문학 검인정교과서 집필 위원 등
시집
≪진도아리랑≫, ≪배고픈 웃음≫, ≪하늘산 땅골 이야기≫
소설
≪봄바람≫, ≪나는 아름답다≫, ≪밥이 끓는 시간≫, ≪너는 스무 살, 아니 만 열아홉 살≫, ≪나를 위한 연구≫, ≪방자왈왈≫, ≪불량청춘 목록≫, ≪개님전≫, ≪세상에 단 한 권뿐인 시집≫
희곡집
≪풍경 소리≫
동화
≪바람으로 남은 엄마≫, ≪까치 학교≫, ≪구멍 속 나라≫, ≪어른들만 사는 나라≫, ≪벌거숭이 나라≫, ≪미리 쓰는 방학 일기≫, ≪개밥상과 시인 아저씨≫, ≪내 고추는 천연기념물≫, ≪도마이발소의 생선들≫, ≪개조심≫, ≪자전거≫
그림동화
≪애국가를 부르는 진돗개≫, ≪아빠의 봄날≫
인물 이야기
≪나비박사 석주명≫, ≪인권변호사 조영래≫, ≪풍금 치는 큰스님 용성≫
교양서
≪아이들이 읽어야 할 경제 이야기≫, ≪경제는 나의 힘≫, ≪백발백중 명중이, 무관을 꿈꾸다≫
산문집
≪동화는 문학이다≫, ≪청소년 문학의 자리≫
옮긴 책
≪나르니아≫ 1~7, ≪켈트족≫, ≪삼국지≫ 1~10 등
차례
자서
1부
꽃동냥치
청소원 아무개 씨
그 아이
누이야
혜진이
아내여
얼굴들, 나
어린 날 1
농투성이 3
젖통 대회
2부
귀앓이
방생
향우회
겨울 아침
무산(無山)
뿌리, 꽃을 보다
환절기
으째사 쓰까
고추 먹고 맴맴 농약 먹고 맴맴
징검다리 3
3부
입산길, 웃는 석씨(釋氏)와
합장
해 뜰 무렵
바다
파도
무심(無心)
겨울엔 노래가 죽는다
새벽 연가
돛단배
꿈
4부
수렵 시대
슬픔의 왕이 있는 시대
택배 상자 속의 어머니
그믐날, 마지막 일기
그대 떠나가는 봄길에 서서
제삿날, 당신의
아내의 브래지어
퉤, 고수레
겨울 나비
전설
5부
새벽
그 땅 그 하늘
지게 작대기
치명적인
사랑
서울을 버린 사랑
그해 오월 (2)
오래된 말
적멸
하늘산 땅골 이야기
박상률은
시인 연보
책속으로
꽃동냥치
밥 한 주먹 담아 먹을 양재기 하나 없이도, 동전 몇 닢 받아 넣을 깡통 하나 없이도, 그는 동냥치다. 한 면에 한 마을씩 가가호호 제삿날만 챙겨 두면 먹고사는 일 정승 판서 부럽지 않은 그. 등짝에 지고 다니는 망태기엔 철 따라 달리 피는 들꽃 가득하여 꽃동냥치라 불리지만, 그는 여태껏 무얼 동냥한 적이 없다. 어쩌다, 제사 없는 날엔 아침 일찍 뒷산에 올라 마을 사람 아침잠을 다 깨운다.
“내 며느리들 빨리 일어나서 나 먹을 아침밥 지어라!”
졸지에 한 마을 아낙이 모두 그의 며느리가 되고 만다.
그가 죽어 그의
꽃망태기도 같이 묻혔다. 그의 무덤에 꽃이 피어났다.
지금 내가 그에게 동냥을 청한다.
“꽃 한 송이, 내 등짝에도 피어나게 해 주세요.”
자서(自序)
흔들리고 지칠 때마다 언어에 기대어 그 순간을 살아 냈다.
나의 언어는 내 문학의 온갖 속살이다.
속살 가운데 시의 언어는 더욱 나를 지탱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.
한 편 한 편 손으로 시를 베껴 쓰자니
새삼 내 몸의 속살을 마구 헤집는 느낌이었다.
편편마다 지난 세월의 사연을 제가끔 간직하고 있는 까닭이리라.
하늘을 머리에 이고 수직으로 곧게 뻗은 나무일수록
가지와 이파리를 털어 내고 있는 사정을 모르는 바 아니다.
그렇다고 비바람이 비켜 가지 않지만
수직으로 하늘을 향해 뻗어 올라가는 나무를 닮은,
닮아야 하는,
내 시의 언어를 더욱 사랑하고 싶은
비바람 치는 여름날….